연도
조사명
발굴기관
출토
1987.05
최초 유물신고
고산리 주민
타제석창, 긁개
출토지점 일대 답사
제주대학교
석기 3점
고산리유적 세상에 알려지다!

1987년 5월 고산리 주민이 석창과 긁개를 발견 신고.

같은 달에 출토지점 일대를 답사한 바, 각 1점의 찌르개, 긁개, 석부(돌도끼) 추가 발견하였다.

그 후 고산리 유적이 알려지며 관계 기관, 단체 등에서 자체 지표조사가 시작되었다.

1988. 01
지표조사
영남대 대학원생
융기문토기 1개체분
신석기초기시대 유물 발견!

1988년 1월, 당시 영남대 대학원생이었던 강창화(현 제주고고학연구소장)에 의해, 수월봉에서 북쪽으로 150m 떨어진 지점의 참호 단면 50cm 바닥 가까이에서 1개체분의 융기문 토기를 수습하였다.

해당 융기문토기는 빗살무늬토기가 유입되기 이전의 신석기시대 전기의 것이다.  당시 기원전 4,000년경에 소속되는 것으로 파악하였으나 지금은 기원전 6,000년을 상회한다.

1991, 1992
정밀 지표조사
정밀 지표조사
약 6,000여점 석기
제주고산리유적 발굴조사 토대 마련!

1991년, 1992년 겨울에 정밀 지표조사가 실시되었다.

자구내포구에서 하천변을 따라 수월봉에 이르는 유물산포지를 확인하였고 지번별로 약 6,000여점의 유물을 수습하였다.

1994. 06-08
신창-무릉간 해안도로건설부지내 발굴조사
제주대학교 박물관
약 3,000여점 석기, 고산리식토기 출토
제주고산리유적 발굴조사의 시작!

당시 신설되는 신창-무릉간 해안도로가 유적지를 관통하게 되어 1994년 06월-08월에 걸쳐 60여 일간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발굴범위는 수월봉에서 북쪽으로 약500m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하여 포구에 이르는 구역으로 총길이 약 200m, 폭 12m구간이다. 도로에 편입되는 8m 확장구역에 한하여 고산리 3526번지 도로 인접 부분을 중심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석기와 토기가 전부이며, 당시의 것으로 파악되는 동물뼈 패각과 같은 유기물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성형․폐기석기 포함 약 3,000여점의 석기와 섬유질토기(고산리식토기) 파편이 확인되었다.


조사의의

해당 발굴로 석기의 구성, 마제석기의 부재, 잔손질에 의한 석기의 제작수법, 화산재의 연대, 융기문토기의 존재로 보아 당시 고산리유적의 시간적 범위는 기원전 6,000년 이전의 시기로 상정하였으며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시대 폭을 일만 년 전까지로 넓혔다.

1997
유적 정비 발굴조사
제주대학교 박물관
약 17,000여점 석기, 약 1,900여점 토기
동북아 신석기시대 초기 문화연구 비교 자료로서의 평가!

1994년 조사 이후 그간 국제학술세미나를 통해 후기구석기말기에서 신석기초기 문화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 유적으로 평가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당시 고산리유적은 유물분석․절대연대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 유적의 층위분석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작에 의해 수십만 점의 유물이 집중적으로 나날이 파괴되고 있어, 유물집중구역에 한해 조사 필요성이 제기 되어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조사의의

1. 제주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신석기초기문화의 형성과정을 밝히는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

당시 우리나라 신석기문화의 시작은 과거 만주․시베리아 지역과 토기의 양식적 비교를 통해서 설명되어 왔을 뿐이었으나 고산리의 유물들은 우리나라 후기구석기말기문화와 신석기초기문화의 연계성을 설명할 수 있는 자료로 파악.

2. 원시형토기와 함께 수천 점의 성형석기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토기와 관련된 석기조합상 연구에 도움.

당시 우리나라 신석기유적의 거의 전부가 토기유물을 주종으로 하나 고산리 유물자료는 석기가 토기와 같이 후기구석기의 발전된 눌러떼기수법과 세형돌날석기가 계속 잔존하고 있어,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연구에서 석기문화에 중점을 두는 연구 계기 마련

3. 동북아 신석기시대 초기 문화연구에 중요한 비교 연구 자료.

고산리 석기 제작방식인 눌러떼기수법의 석기들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에 보편적으로 사용된 석기들이다. 고산리 유적에서 확인되는 각종 세석기․원시형토기․융기문토기 유물조합상의 출현 시기는 동북아 전체의 신석기초기의 세석기와 토기 공반상을 비교해 볼 때 시베리아․연해주․만주․일본․한반도일대를 포함하는 주변지역의 시기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1998
발굴조사
제주대학교 박물관
약 170여점 타제석기, 토기
국가지정 사적지로 위상 정립!

1998년 11월 ~ 1999년 2월에 이루어진 발굴조사를 통하여 1999년 사적 412호로 지정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 조사는 사적지정 구역 외 지역에 대한 조사를 통하여 지역구역 확대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즉 기존의 조사에서 확인되지 않은 유적의 성격과 자료의 분석을 진행하였고, 동시기 문화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또한 절대연대측정에 필요한 유기물 자료를 얻어 보다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연구 작업을 하고자 하였다. 


조사 의의

1. 국가지정 사적지로 위상을 정립함

2. 당시대의 문화상을 복원

2012
1구역 시굴조사, 발굴조사 1차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원형움집터 26동, 수혈유구 295기,
야외노지 10기, 구상유구 2기, 토기류 87점,
석기류 278점

제주 고산리유적 생활 유구 (화덕시설, 구덩이) 확인! 한반도 가장 오래된 마을!

2011년 제주역사문화진흥원 고산리유적지 정비복원 계획 수립 후 조사가 시작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총 300여점이며 그 중 토기 80%이상이 고산리식토기이다.

특히 처음으로 결상이식(한쪽을 뚫은 옥 귀고리) 1점이 출토되었다.

이번 조사는 절대연대분석 중심으로 시작되었는데, 후에 1만년이전으로 확인되었다.


조사의의

1. 한반도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초기 유적

이번 조사에서 처음으로 집단적으로 생활했던 추정되는 ‘유구’를 발견하여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정착생활을 했던 유적으로 평가된 중요한 학술적 자료로 동북아시아 신석기 문화를 재조명.

2. 대외교류 확인

이번에 출토된 유물 중 석촉과 특히 결상이식(한쪽을 뚫은 옥 귀고리) 1점이 있는데, 이들 재료가 제주에는 없기에 당시 대외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파악.

2013
1구역 발굴조사 2차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주거지 7동, 수혈유구 227기, 야외노지 3기,
구상유구 1개소 , 215점 유물

제주 고산리유적 연차발굴 실시!

출토된 유물은 총 215점이며, 발굴된 석촉 등 석기가 남해안일대 암석으로 확인되면서 타지역과 교류가 있었음을 재확인하였다.

2014
1구역 발굴조사 3차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주거지 4동, 수혈유구 78기, 소토유구 3기,
구상유구 2개소

2구역 시굴조사, 발굴조사 2차
제주고고학연구소
문화층 잔존범위, 지상식 주거지
신석기시대 전기 영선동식토기의 발견!

총 유물 30점 외 5박스가 출토되었다.

토기류는 고산리식토기가 압도적인 출토량을 보인 가운데 특히 옆면과 바닥까지 모양이 비교적 온전한 고산리식토기가 발견되었다. 또한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영선동식토기도 출토되었다. 영선동식 토기는 국내 남부지방 신석기시대 전기를 대표하는 토기로서 고산리유적보다 늦은 시기로 거주 시간적 폭이 늘어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조사로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정도의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고산리 유적 거주기간이 2000년으로 늘어났다고 볼 수 있으며, 고산리 유적이 가진 고고학적 잠재력을 다시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2015
1구역 발굴조사 4차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주거지 1동, 수혈유구 19기, 소토유구 1기
2구역 발굴조사 2차
제주고고학연구소
좀돌날몸돌 및 다양한 석기군

· 지상식 생활주거지의 확인

· 화덕시설로 추정되는 돌무지 시설을 중심으로 거의 원형으로 기둥 구멍들이 배치되어 있고 그 안에 석기 제작과 관련된 유물들이 확인됨.

2016
제주고산리유적정비사업(안내센터)
사업부지내 유적 조사

제주고고학연구소
좀돌날몸돌 및 다양한 석기군

본 자료는 제주대학교박물관,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제주고고학연구소에서 출처,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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