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리식 토기

식물성 섬유질 토기

토기성형 시 식물(초본류)의 줄기 혹은 잎을 점토와 함께 태토로 섞어 만든 후 소성시 타 없어진 후 그 흔적이 토기 내외면 뿐만 아니라 속심에도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이 토기의 식물성 섬유질 종류는 대부분 초본류의 벼과의 억세 속, 일부 목본류이다. 짐승 털로 보이는 동물성 섬유질 흔적도 간혹 확인된다. 토기 소성온도는 520~870℃으로 비교적 낮다. 색은 대부분 적갈색이며 일부지만 황갈색과 흑갈색을 띤다. 이러한 섬유질토기는 한반도에서는 알려진 바 없는 토기로 동북아 신석기시대 초창기 고토기로 알려져 있다. 제주도내 김녕리유적, 강정동유적, 오등동유적 등지에서 확인되어 12,000~8,000년 전 고산리 주민의 활동무대가 제주 전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르강 하류의 가샤유적과 아무르강 중류의 그로마투하유적 등지에서 확인되며 12,000년전 고산리 수렵채집집단의 이동경로와 정착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동북아 및 한국신석기유적 분포도

고산리유적의 연대

고산리유적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그 실체가 확인된 초기신석기문화의 성격과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유적이다. 고산리 초기신석기문화에 대한 연대폭은 상한을 12,000~10,000B.P.로 하한은 8,000~6,000B.P. 이상 상회하는 것으로 나온다. 동북아 고토기유적의 분포를 토대로 상한설의 근거로, 후기구석기 최말기 석기의 특징인 세석인 기법과 초기신석기 양면박리원칙의 이차가공 석기군을 들 수 있다. 이들 석기는 동북아시아 전체를 무대로 후기구석기 최말기에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각주형 세형몸돌과 양면석기가 세장한 창끝, 화살촉, 석창 등 양면박리를 원칙으로 하는 석기분화 현상 속에서 파악된다.  그 시기는 지역마다 차이는 있으나 절대연대 수치로 보아 대략 13,000-12,000년까지 올라간다. 또 하나의 근거는 이들 석기군과 같이 출토되는 식물성유기물이 혼입된 고토기 형식이다. 고산리에서 출토된 토기형식 중에 대표적인 토기는 무문양의 식물성 섬유질이 혼입된 고토이다. 이러한 고토기는 전체적인 출토수량의 80%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식물성 섬유질 토기 외에도 무문양토기, 융기문토기, 압형문토기, 압날자돌문토기, 압날지자문토기 등이 확인되었다.

동북아한민족의 계통

고산리에서 나오는 섬유질토기와 동일한 제작수법으로 만들어진 토기는 아무르강 하류의 가샤유적과 아무르강 중류의 그로마투하유적을 예로 들 수 있다. 특히 가샤 유적의 토기는 풀을 섞어 성형하여 350℃의 저화도로 구어 낸 것으로 외면 조흔 평저심발형이다. 같이 출토는 석기는 양면박리 첨두기 등 석기와 세형몸돌 등이다. 결국 고산리 유물조합상과 비교할 수 있는 지역은 아무르강 중․하류 유적들인데 이들은 후기 구석기시대 셀렘쟈문화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첨두기 문화를 특징으로 하는 오시포브카 문화권이 속한다. 오시포브카 문화는 첨두기 제작기법에서 나오는 유․무경식 등 각종의 석촉을 포함한 세형몸돌을 공반하고 있다. 토기의 특징은 평저이고 태토에 식물성 섬유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내․외면 융기문이 시문된 것을 특징으로 하는 문양계통이나 원공문토기, 회전압날문, 압형무늬 기법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 유적의 절대연대측정치는10,000~13,000B.P. 사이에 있다. 2004년 발굴조사한 그로마투하 유적의 절대연대측정치는 12,340±100, 10,345±110B.P. 연대가 나왔다. 15,000년 전 최종빙하기의 해안선과 강의 분포도 이들 아무르강 유역에서 보고된 고토기들은 문양기법에 있어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즉, 고산리 초기신석기문화는 아무르강 유역의 신석기문화와 관련이 있고 한국 내륙지방에서 고산리 유물조합이 확인된 바 없으며 일본열도의 구주와 연관성이 약해 결국 급격한 해수면의 상승과정 에서 황해 평원의 강줄기를 다라 서서히 내려왔을 가능성이 크다. 고산리 주민 유입이 11,000-10,000B.P.경에 이루어졌다면 당시 해수면의 상승과정과 기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많은 이견이 있으나 10,000B.P. 이전 황해바닥 전체가 노출되어 육지로 존재하였고 중국, 한본 본토, 일본열도 모두가 하나의 대륙으로서 연결되어있었다고 한다면 11,000년 전 급격한 해수면 상승과정에서 많은 장애물이 있었겠지만 육로를 통한 유입가능성이 있다.

 제주도 신석기토기의 변화

 제주도내 신석기유적지

제주도내 신석기유적지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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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고산리유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을해안로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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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리 유적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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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동유적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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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도유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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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두동유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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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동유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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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동유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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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리패총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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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리유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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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동유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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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자료는 제주대학교박물관,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제주고고학연구소에서 출처,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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